다빈치에게 초상화, 가우디에게 건축디자인 의뢰할 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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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에게 초상화, 가우디에게 건축디자인 의뢰할 날 온다
  • 원천보 전시기획자
  • 승인 2019.02.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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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유혹하는 전시_ 예술부활 꿈꾸는 현대기술 下

美 살바도르달리미술관, 고전작품 모티브로 가상현실 체험 선보여
VR고글 끼고 밀레 ‘만종’ 감상, 세계 메이저 미술계 수용성 심상찮다
자극적 영상 속 고급예술 ‘경쟁력’ 증명…유튜브 조회수 200만건 넘겨

기괴한 고전예술가가 첨단기술을 만났다면… “끊임없이 질문 던졌을 것”
IT기술력, 영상구현 넘어 작품세계 재해석까지 “예술을 파괴하고 있는가”
‘Next Rembrandt’ 딥러닝 알고리즘, 렘브란트 그림 346점 분석 ‘재탄생’

20190109_154241.jpg▲ GS&P사에서 유투브에 공개한 ‘달리의 꿈’. VR고글을 쓴 관객의 모습은 꿈을 꾸며 달리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미국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Salvador Dali Museum)은 2016년 1월 ‘디즈니와 달리: 상상의 건축’ 전시 개최를 기념해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세계를 가상현실을 통해 체험해 볼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VR 고글을 착용하고 살바도르 달리의 ‘밀레의 만종을 고고학적으로 회상하기(Archeological Reminiscence of Millet’s ‘Angelus’)’를 3D로 구현한 VR 영상을 체험했다. ‘달리의 꿈(Dream of Dali)’이라고 명명된 이 영상에서 펼쳐지는 웅장한 시각적 성취는 전시장 내부를 360도 영상으로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던 기존의 미술관 VR과는 야망의 크기가 달랐다. 달리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다리 긴 우주코끼리는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끝도 보이지 않는 벌판에서 걸어오고,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 모티브가 된 커다란 탑 안을 들여다보는 경험은 살바도르 달리 작품에서 상상했던 시각적 비전을 높은 수준으로 완성시켰다. 

달리는 실험적인 작품부터 상업광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창작활동을 했던 예술가였다. 스스로를 천재로 과신했던 이 기괴한 예술가가 첨단기술이 넘쳐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면, 얌전히 작업실에서 유화만을 그리고 있었다고 믿기 어렵다. 그런 달리가 이 VR영상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의 삶은 예측하기 힘든 기행으로 가득찼지만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그의 걸작들을 가지고 해괴망측한 짓을 했다고 화를 내진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대신 희번덕거리는 큰눈을 더 크게 뜨고, 멋진 콧수염을 실룩거리며 VR 기술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질 것만 같다. 이 작업이 시대를 뛰어 넘어 고전 예술가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영상을 제작한 광고에이전시 GS&P(goodby silverstein & Partner)의 샘 루치니(Sam luchini)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달리의 그림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면, 멋진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시도해 본 작업이 아니었기에 더욱 흥미로웠죠. 그러나 달리의 그림을 그대로 답습해 재창조하는 것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달리의 붓터치를 따라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단 걸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의 상상세계를 엿보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SNS로 축약본 영상 ‘무료’ 제공
 
또 하나의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달리 미술관이 이 영상을 활용한 방법이다. 그들은 현장에서 VR체험만 제공한 게 아니라 유튜브(YouTube)와 페이스북(Facebook)에 무료로 축약본 영상을 공개했다. 큰 예산을 들여 만든 이 영상을 전시장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무료로 온라인 공간에 배포한 이유는 무얼까. 그건 이 영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제작사가 GS&P라는 광고에이전시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이 영상은 마케팅 목적이 숨어있다는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 유투브에서만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자극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예술 콘텐츠가 이정도의 결과치를 만들어 냈다는 건 놀라운 성취다. 달리 미술관은 ‘디즈니와 달리’에 내방한 관객 수가 전년에 개최했던 다른 기획전시에 비해 37% 증가했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 VR영상이 상당부분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전세계적으로 이 VR영상 자체가 화제가 됐기 때문에 단순히 해당 기획전시에 대한 홍보뿐 아니라, 미술관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홍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VR영상은 많은 전시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지만, 첨단 기술을 예술에 적용하겠다는 의욕 이상의 수준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획자들이 부족한 제작예산으로 영상의 질적 수준 자체를 높이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VR기술에 대한 이해 자체가 선행되지 못한 탓이 큰 듯하다. 근본적으로 1:1 체험에 특화된 VR이 다수를 상대하는 전시장에 과연 적합한 기술인지부터 고려돼야 한다. 살바도르 달리 VR은 적어도 VR이 전시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하나의 훌륭한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니까.

사진2_렘브란트그림.jpg▲ AI 화가 ‘더 넥스트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

3D프린터로 작품 질감까지 구현
“무시무시할 정도의 완성도”

또 다른 광고에이전시는 놀라운 프로젝트를 세상에 공개했다. ‘넥스트 렘브란트(Next Rembrandt)’라는 프로젝트다. 총 18개월이 걸린 이 프로젝트는 네덜란드의 광고회사 월터 톰슨(J. Walter Thompson)이 기획했으며, ING,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협업했다. 딥러닝 알고리즘이 346점의 유명한 렘브란트 그림을 분석하고 렘브란트의 그림 주제와 스타일을 모방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흰색 깃이 있는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수염이 난 백인 남성을 그려야 한다고 결론을 낸 인공지능은 램브란트 화풍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3D 프린터로 그림의 질감까지 고려한 무시무시할 완성도의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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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작품 제작과정. 출처=넥스트 램브란트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앞으로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생각해 본다면 엄청난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이 기술이 순조롭게 진보한다는 전제에서 다빈치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수도 있고, 안토니 가우디에게 전원주택의 건축디자인을 의뢰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이미 IBM과 뉴욕의 디자인스튜디오 SOFTlab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우디 풍의 조각을 합작했다) 조만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인공지능 피카소의 작품을 만날지도 모른다.

일단 이 기술이 진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은 접어도 될 것 같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스 코스텐(Bas Korsten)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넥스트 렘브란트의 넥스트는 넥스트 반 고흐, 넥스트 달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더 혁신적인 작업, 마이클 잭슨과 엘비스 프레슬리와 듀엣, 넥스트 샤넬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복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그의 야심을 밝혔다. 이들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비단 두 광고에이전시가 성취한 혁신적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아니라도, 예술이 기술과 융합하는 방식과 사업전략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광고에이전시와 같은 상업적 기관의 프로젝트를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과 같은 메이저(!) 미술계에서 수용한 유연성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술기업이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업적 상상력이 경이로운 성취의 밑바탕이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혁신적인 사례들을 축적하며, 거대한 흐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동력과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가상미술관 체험, 실제 작품 보고싶게 만들어”

역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기술이 기존 산업을 와해시키는 일은 종종 목격된다. 이런 방식의 예술작업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거나, 과거의 방식만을 인정하는 예술가와 대중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프로젝트가 과연 예술을 파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구글(Google)사의 아트프로젝(Art Project)를 담당하고 있는 로랑 가보(Laurent Gaveau)는 “가상미술관 체험은 실제 예술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를 증가시킨다”라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단언하기 어렵다.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론이 결과를 낙관적으로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이 기술들이 대중과 예술의 접점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있고, 적어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에겐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정에 놓여 있는 예술과 기술의 공존방식에 종착점을 판단하긴 아직 이르다. 다만, 이처럼 당혹스러운 기술로 함부로 넘어선 안 될 ‘성지’에 있는 당대 거장들이야말로, 이 첨단 기술을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전의 방식을 거부하며 그들의 세대에서 낯설고 혁신적이었던 작업을 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원천보.jpg원천보 전시기획자
중앙일보 문화사업팀장(2001~2014), 모바일 기반 미디어기업 메이크어스의 이사를 지냈다. 전시콘텐츠기획사 빅피쉬씨엔엠 대표로 있다. ‘퓰리처상 사진展’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중앙미술대전’ 외 다수의 작품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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