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예술 변방이 ‘저작권자’ 된 이유…한계지점에서 구한 해답은 ‘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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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술 변방이 ‘저작권자’ 된 이유…한계지점에서 구한 해답은 ‘통섭’
  • 원천보 전시기획자
  • 승인 2018.11.0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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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유혹하는 전시_ 예술부활 꿈꾸는 현대기술 上

반고흐얼라이브‧아미엑스 등 디지털 미디어, 고전예술 ‘재탄생’
기술발전은 표현수단 확장 “혁신적 예술 뒤엔 과학진보 있었다”
‘원조’ 그리워 한탄만? … 기술과 예술 ‘공존’ 택한 실험들 ‘주목’
“예술가 향한 후광‧존경 제거 아닌 구원의 새로운 가능성” 시선도

사진1_반 고흐 얼라이브.jpg▲ 반 고흐 얼라이브(Van Gogh Alive). 사진출처= 그란데 익스비션 홈페이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오늘날에도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이 여신의 남편이 늙고 못생긴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라는 건 어떤 은유일까. 학자들은 이를 예술과 기술의 결합으로 해석한다. 학자들의 해석대로 이 어울리지 않는 이종장르의 결합이 서로를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동반자의 관계에 있어야 함을 그 먼 옛날에도 알았다면, 이 은유는 꽤나 예언적이다. 인공지능이 램브란트의 작품을 그려내는 오늘날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기술 간 협조적 관계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다. 정확한 신체 비례를 그려내기 위해 화가들은 해부학을 공부했고, 수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수학이론으로 음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튜브 물감의 발명은 작업실에서 벗어나 빛의 변화를 화폭에 담을 수 있도록 화가들에게 기동력을 선사하기도 했고 이는 인상파라는 새로운 미술사조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은 표현 수단의 확장이었으며, 예술가들은 이를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갔다. 혁신적 예술 성취 뒤엔 과학의 진보가 함께 했다.

사진과 영상의 출현, 그리고 인공지능

이 동지적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사건은 ‘사진’의 발명이다. 기술 발전의 수혜를 입어온 화가들에게 ‘사진’이라는 기술은 위협적인 최초의 기술이었다. 이 세상을 똑같이 담아내는 미술의 분야는 수천년 동안 일반인들이 예술가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가장 전형적인 것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사진에 헌납됐다.

사진은 곧 영상으로 발전됐다. 영상은 시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왕으로 군림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D 프린터의 발명은 입체의 영역마저 위협했고, 인공지능의 출현은 다른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예술가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대를 겪어야만 했던 세대들에겐 두 가지 길이 존재한다. 라파엘로와 반 고흐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신세 한탄을 하든지, 새롭게 주어진 환경과 예술의 공존 가능성을 탐구하는 유형이 그것이다.

20181108_171544.jpg▲ 반 고흐 얼라이브(Van Gogh Alive). 사진출처= 그란데 익스비션 홈페이지

논의해 볼 주제는 당연히 후자의 사례들이다. 오늘날 예술과 기술의 결합은 매우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가진다.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이 여정에 수많은 부작용과 빛나는 성취들이 존재할 것이다. 최근의 사례를 통해 이 분야의 진화의 과정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분량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심적으로 다룰 분야는 이미 산업적 성과를 낸 전시형태의 사례들이다.

첫 번째 사례는 ‘반 고흐 얼라이브(Van Gogh Alive)’다. 이 전시는 2008년 호주의 전시회사 ‘그란데 익스비션(Grande Exhibition)’이 만든 반 고흐 영상 전시다. 반 고흐 작품 3000여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데 진품은 한점도 없다. 대신 크고 높은 벽에 반 고흐의 대표작들이 커다란 크기의 프로젝터로 상영됐다. 유려한 클래식 곡과 함께 반 고흐 작품들은 리듬을 타듯 움직였다.

이 전시는 지난 10년간 30여개의 도시를 순회하며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반 고흐에게 돈 한푼 지불하지 않고 있다. 반 고흐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 이미 종료됐기 때문이다. 대신 ‘그란데 익스비션’이 전시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게 됐다. 호주와 같은 고전예술의 변방국가에서 고전 예술 저작권자가 된 이유는 오로지 ‘기술’ 덕분이다. 다만, 이런 상황은 ‘그란데 익스비션’에만 좋은 일은 아니다. 그들이 순회전시를 한 30여개 도시 중 몇몇 도시들은 고액의 대여비를 지불하면서 유럽의 유명 미술관들로부터 진품전시를 유치할 경제규모를 갖추지 못한 곳들도 포함돼 있다. 소외지역의 시민들이 반 고흐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그란데 익스비션은 ‘101개의 발명품(101 invention)’ ‘다빈치 얼라이브(DaVinci Aliv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등 유사한 형식의 전시를 추가로 개발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고전회화와 음악 흐르는 채석장 ‘60만명’ 발길

프랑스 남부 레보 드 프로방스(Les Baux de Provence)에 1935년 문을 닫은 석회암 채석장은 2012년 멀티미디어 예술전시장으로 새로 태어났다. ‘빛의 채석장(Carrieres de Lumieres)’으로 불리는 이 공간은 10m가 넘는 채석장 동굴의 벽면을 매체로 활용해 고전회화들을 음악과 함께 선보였다.

여분사진_클림트미디어전시.jpg▲ Atelier des Lumieres, 클림트(Gustav Klint) 미디어 전시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지난해만 60만명의 관객이 이 장소를 찾았다. 이 전시를 제작한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는 ‘아미엑스(AMIEX, Art & Music Immersive Experience)’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미엑스’는 역사, 광산, 공장, 발전소 등 도태되는 장소에 프로젝션 맵핑 기술과 음향을 활용한 전시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다. ‘컬쳐스페이스’는 올해 파리의 낡은 철제 주조 공장을 개조해 ‘빛의 아뜰리에(Atelier des Lumieres)’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공간을 추가로 오픈했다. 총면적 3300㎡, 천고 10m 높이의 이 공간에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와 에곤 쉴레(Egon Schiele)를 전시하고 있다.

이들은 혁신적인 예술 프로젝트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들의 콘텐츠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 우선 전시의 소재들이 대체로 평범하다. 반 고흐, 클림트, 샤갈, 모네, 르누아르 등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유럽 고전회화들이 주류를 이룬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형식은 ‘그란데 익스비션’의 전시기법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며, 이미 이 정도의 제작 능력은 국내 프로덕션에서도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수준이다.

사진2_Carrieres de Lumieres.jpg▲ Carrieres de Lumieres, 샤갈(Marc Chagall) 미디어 전시

사업적 상상력에서 출발한 ‘통섭’

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콘텐츠 제작 능력보다, 낙후시설을 예술적 공간으로 재생하는 데 미디어 아트를 활용했다는 사업적 상상력이다. 지방자치단체, 예술가, 사업가, 프로덕션, 관광산업 등 서로 다른 개념과 인력들이 한 데 묶여 시너지를 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 분야의 한계지점에서 답을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 간다는 건 모범적인 ‘통섭’의 사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두가지 사례 모두 예술이 소재였고, 기술을 활용했지만, 이들의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달랐다. 이 모든 프로젝트들이 개인의 작업이 아닌, 대형 프로젝트임을 전제로 할 때, 자본의 투여는 필연적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아프로디테’와 ‘헤파이스토스’의 사이에 상업의 신(神)인 ‘헤르메스(Hermes)’의 등장이 필연적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성스러운 황홀경인 예술을 논하면서, 자본의 이해타산이라는 차가운 얼음물 속에 빠진 느낌이 드는가? 그러나, 사업가들이 예술가들의 후광과 존경을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들을 구원을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 계속

 

원천보.jpg원천보 전시기획자

중앙일보 문화사업팀장(2001~2014)을 지냈고, 현재는 모바일 기반 미디어기업 메이크어스의 이사(2014~)로 있다. ‘퓰리처상 사진展’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중앙미술대전’ 외 다수의 작품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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