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상보단 ‘인생샷’ … “전시는 SNS의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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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감상보단 ‘인생샷’ … “전시는 SNS의 배경이 된다”
  • 원천보 전시기획자
  • 승인 2018.06.2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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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유혹하는 전시 ①전시 판도 바꾸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 연재를 시작하며 |
우리는 ‘전시’를 떠올릴 때 앤틱액자가 걸려있는 유럽의 미술관을 연상하게 된다. 작은 기침 소리에도 정적이 깨질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미술관 말이다. 그러나 전시는 다양한 콘텐츠를 담는 매체일 뿐, 특정한 형식이나 콘텐츠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굳이 ‘전시’라는 용어 정리를 확인하는 이유는 점점 전시의 확장적 의미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전시기법이 가능해졌고, 엔터테인먼트산업의 고도화로 새로운 소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의 요구도 달라졌다. 디지털 세대들은 이미 산업의 많은 부분들을 바꿔 놓았다. 새로운 형태의 전시들을 관찰하고, 전시의 미디어로서 확장적 잠재성과 산업적 가치를 논의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사진1_29RoomsEvent-5997.jpg▲ ‘29개의 방’의 모든 전시물들은 체험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관람객은 29명의 아티스트가 만든 29가지 예술체험을 한다. 사진출처= 29 rooms 공식 홈페이지

“밀레니엄 세대에겐 SNS에 올릴 수 없다면 아무것도 일어난 게 아니다.”

CNBC의 미셀 카스틸로 기자는 SNS에 대한 젊은 세대의 시각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 SNS의 등장은 기존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전시도 마찬가지다. SNS에 올리기 위해 레스토랑에 가고, 여행을 가는 밀레니엄 세대에게 진귀한 것들로 가득찬 전시장은 인생샷을 확보하기 위한, 그들의 욕구를 채우기에 적당한 장소다.

전시가 가진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시각적 존재)’한 성격으로 인해 전시는 큰 기회를 맞이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밀레니엄 세대들은 전시장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 관심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예술을 향한 진지한 교감을 원하는 기존의 관객과 다른 유형이다.

이들은 처음엔 소란스럽고, 촌스러운 관객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들은 점점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늘어 하나의 핵심 집단이 됐다. 내부 촬영을 금지했던 전시장들도 촬영을 허락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변화는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기존 전시장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세상과 타협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진촬영을 목적으로한 노골적인 ‘인스타용 전시’들이 기획되기에 이르렀다. 상업적 관점에서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다.

인증샷 확보하면 다음 전시물로 이동 모바일이 바꿔놓은 전시문화

미국의 모바일 콘텐츠 회사 ‘리파이너리 29(Refinery 29)’는 창사 10주년을 기념해 ‘29개의 방(29 Rooms)’이라는 전시를 만들었다. 이 전시는 29명의 아티스트에게 1개의 전시실을 부여하고 패션, 트렌드, 스타일과 같은 주제로 작품을 의뢰했다. 주로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작업했는데 기술과 흥겨운 음악을 활용해 전시장을 나이트클럽 같은 분위기로 연출했다. 관객들이 만지고, 때리고, 밟는 방식을 통해서 작동하는 ‘인터렉티브 아트’다. 여기선 사진기의 셔터소리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전시가 지속될수록 관객에 의해 전시회의 이미지는 온라인 공간에서 확대 재생산됐다. 돈이 들지 않는 효과적인 광고인 셈이다. 물론 주최사인 ‘리파이너리 29’는 모바일 생태계 전문가 집단이기에 온라인 상에서 그들의 콘텐츠가 확장될 것을 기획단계에서 예측했을 것이다. 이들은 전시에 관한한 전문가 집단이 아님에도,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콘텐츠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시를 선택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 전시는 뉴욕을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고 있으며, 이후 시카고 전시가 예정돼 있다.

사진2_Color-Factory-Tour-14.png▲ ‘컬러팩토리’ 전시장은 포토스튜디오에 더 가깝다. 전시물은 관람객을 돋보이기 위해 존재한다. 사진출처= designmom.com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컬러 팩토리(Color Factory)’는 디지털 기술보단 아날로그적인 체험에 집중한다. ‘색’이라는 중심 테마로, 거대한 노란색 볼풀(ball pool), 대형 색칠놀이, 형형색색의 미러볼(mirror ball) 등을 이용한 체험을 제공한다. 마치 성인용 키즈 카페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키즈카페의 아이들처럼 어른들이 이곳에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사진’이다. 볼풀에서 노는 체험보다, 볼풀에서 놀고 있는 인증샷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관객들은 그들이 원하는 인증샷을 확보하면 그 다음 전시물로 이동한다. 전시 주최측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셀피(Selfie) 전시임을 홍보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는 미국만의 트렌드는 아니다. 국내 전시에서도 ‘인스타그래머블’한 트렌드가 반영된 전시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제목을 아예 ‘인생사진관’ ‘인스타지아’로 정해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전시들도 생겼다. 근사한 미술전시는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을 뿐이다.

사업적 측면만 고려하면 제작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값비싼 화가들의 작품이나 오래되고 귀한 유물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참고할만한 사례는 주변에 풍부하다. 개발 비용은 원작을 확보하는 것보다 현저하게 저렴하며, 콘텐츠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간에 따른 추가 비용이 없다. 라이선스 비즈니스도 가능하며, 직영 전시장을 늘릴 수도 있다. SNS상의 확산효과로 마케팅 비용도 부담을 덜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투자 관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다. 그럼 미래는? 그건 과거가 증명해 주고 있다. ‘트릭아트’나 ‘왁스뮤지엄’을 생각해 보면 예측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창의성 없이 오직 트렌드에만 집중한 전시들은 장르 안에서 자기복제를 거듭해 트렌드의 수명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가능성이 높다. 모처럼 찾아온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단지 트렌드만 담은 것이어선 곤란하다.

모리미술관, SNS 활용 전시 ‘61만명’ 다녀가

이 지점에서 일본 모리미술관의 전시 ‘레안드로 에리히: 보는 것과 믿는 것(Seeing and Believing)’은 참고할 만하다. 레안드로 에리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다. 전시는 진지한 미술작품이면서 대중이 열광하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일본의 미술관은 전시장 내에서 관람객 간 대화를 제지할 정도로 보수적이지만, 모리미술관은 이례적으로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과 영상촬영을 모두 허락했다. 이는 작품 자체가 관람객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인스타그래머블’한 현상을 충분히 인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포맷변환_사진3.jpg▲ 레안드로 에리히의 ‘빌딩’이란 작품이다. 관람객들이 바닥에 설치된 건물에 누어 있으면, 반대편 거울에 위태롭게 매달린 것처럼 보여진다. 모리미술관은 영상광고에서 ‘당신도 닌자가 될 수 있다’는 도발적인 카피를 내세웠다. 사진출처= 모리미술관 전시 광고 영상 갈무리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상업적 대성공을 이끌어냈다. 모리미술관이 밝힌 관람객 숫자는 135일간 무려 61만4411명이다. 하루에 4500명이 넘는 수치다. 이는 일본의 메이저 전시장 중 하나인 모리미술관 15년 역사 이래 두 번째로 많은 관람객 숫자다.(가장 많은 관람객을 달성한 전시는 ‘행복’이라는 이름의 개관 전시였다) 이같이 기념비적인 상업적 성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루브르박물관에서 대여했다거나, 반 고흐의 ‘해바라기’ 전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불가능에 가까운 컬렉션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레안드로 에리히는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도 아니며 TV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화제의 인물도 아니다. 그렇다면 성공의 비결을 SNS에서 찾으면 온당할까. SNS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상업적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란 추측은 할 수 있다. 하지만 SNS만으론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시작은 SNS가 만들어 냈고 젊은 관객들이 주도했지만, 이후 TV, 신문 등 전통 매체에서도 충분히 소개할만한 수준의 전시였고, 남녀노소 감상할만한 보편적인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모두 관람객이 자리를 채워주면서 완성되며,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점잖은 관객들도 수줍어할 필요없는 자연스런 감상법이다. 인생샷을 위해 줄을 서고, 연출을 하는 것관 차이가 크다. 모리미술관은 사회적 현상을 잘 관찰했다. 본인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면서 관객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지점을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인스타그래머블’은 대중이 가진 욕망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 기획자가 이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표현의 방식은 언젠간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보다 본질적인 건 ‘유형’보다 대중에 대한 기획자의 세심한 배려다. 그것이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트렌디한 전시들에서도 다양한 수준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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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보 전시기획자
중앙일보 문화사업팀장(2001~2014)을 지냈고, 현재는 모바일 기반 미디어기업 메이크어스의 이사(2014~)로 있다. ‘퓰리처상 사진展’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중앙미술대전’ 외 다수의 작품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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