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색 물빛과 분진… 너무 기대했나?’ 실망했지만 ‘장밋빛 청사진’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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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색 물빛과 분진… 너무 기대했나?’ 실망했지만 ‘장밋빛 청사진’은 있었다
  • 박재아 인도네시아관광부(MoTCE) 한국지사장
  • 승인 2020.01.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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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아의 비비디바비디부] 화려한 유령도시 아스타나(現 누르술탄) 上
아스타나의 바이테렉 타워(Baiterek Tower) 전경. 총 면적 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타워와 공원은 알마티에서 아스타나(현 누르술탄)로 수도를 이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자주국방과 창조 국가를 이룩하려는 염원을 담은 구조물이다.
아스타나의 바이테렉 타워(Baiterek Tower) 전경. 총 면적 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타워와 공원은 알마티에서 아스타나(현 누르술탄)로 수도를 이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자주국방과 창조 국가를 이룩하려는 염원을 담은 구조물이다.

중앙아시아 최대 자원부국 명성 잃어가는 카자흐스탄
수도에 자기 이름 남기고 떠난 前 대통령 ‘불명예(?)’
천문학적 비용 치르며 이전 ‘꿈의 도시’ 5개년 계획

카자흐스탄은 두 번째다. 2015년 알마티를 방문한 데 이어 올해는 수도인 누르술탄(nursultan, 옛 아스타나)을 다녀왔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국가다. 내륙 환경을 떠올리면 마냥 건조하고 스산할 것 같지만, 알마티에 가보면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진다.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의 이전 수도로, 웅장하지만 아름답고 고색창연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들이 가진 역사와 전통에 대해 자신감과 희열에 넘쳐 이야기했다.

‘~스탄’ 국가들에 대해 정규교육과정에서 거의 배우지 못했던 터라 만나는 모든 장면과 역사적 사실들이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 전통이 현대에도 꽤 무리 없이 이어져 온 것을 식당과 시장에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쇼핑몰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진하게 우린 사골이 투박하지만 손 때 묻은 놋그릇에 담긴 맛이랄까. 알마티에서 카자흐스탄의 깊은 매력에 빠졌고, 언젠가 꼭 다시 가볼 수 있기를 고대했다.

지난 9월 누르술탄에서 60개국(220개 부스) 관광 분야 전문가들이 모이는 아시아·태평양관광박람회(PATA Asia)가 열린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망’ 이튿날부턴 호텔방에서 시간을 때우다 가능한 빨리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쉬운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정말 그것뿐(!)이었을까.

 

‘짐이 곧 수도다’
독재자의 정지선 없는 야심

누르술탄이란 지명은 아스타나(astana)에서 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기도 하지만, 사연을 들으니 자꾸 입에서 겉돈다. ‘누르술탄’은 사임한 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1990년 4월 24일 취임해, 30년이나 독재정치를 벌이다 경제난 등으로 지지율이 폭락하자 자진 사임한 불명예스러운 리더다. 그런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수도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왼쪽)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왼쪽)과 토카예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사임으로 대통령직을 인수한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 Jomart Tokayev) 대통령(당시 상원의장)이 수도 명칭을 누르술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의회는 제안 당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일사천리로 관련 법률을 통과시켰다. 사임 발표 바로 다음날 수도 명칭이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바뀌었고, 조기 대선 일정이 발표됐다.

예고없이 급박하게 전개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사실 수년간 치밀하게 준비된 시나리오였다. 사임은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정치 쇼(show)’에 불과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사임연설에서도 “대통령직에선 물러나지만 국가안보국 수장, 집권여당인 ‘누르오 탄(조국의 빛)당’의 당수, 헌법위원회 위원장직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위에선 물러나지만, 꼭두각시를 세우고 뒤에서 권력을 행사할 것을 대놓고 공표한 셈이다.

나자르바예프가 사임한 표면적 이유는 경제난이다. 카자흐스탄은 원유 매장량 세계 12위, 천연가스 22위, 우라늄 2위, 크롬 1위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다량으로 보유한 중앙아시아 최대 자원부국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따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제재 조치의 불똥이 카자흐스탄에도 튀면서 러시아와 교역이 축소되는 등 주요 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

부정축재 문제도 불거졌다. 로이터통신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원유 수출을 대가로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외화를 챙겨 왔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나자르바예프는 올 2월말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지 못했다”며 내각을 총사퇴시키는 등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국민이 장기 집권과 독재에 염증을 느끼고 있단 점을 고려해 사임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후계자로 세우려면 잠깐의 정치적 희생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슬람 카리모프 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후계자 지명도 못한 채 2016년 급사한 전례를 의식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개명 배경 탓일까, 누르술탄이란 지명이 입에 붙지도, 달갑지도 않았다. 독재자는 이선으로 물러나는 척 하면서 독재를 이어가는 게 마치 국민을 우롱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개명은 됐지만, 이 글에서는 누르술탄의 옛 지명인 ‘아스타나’를 살려쓰기로 한다.

아스타나는 2017년 엑스포를 개최했다. 당시 주제는 '에너지와 미래(Energy of the Future)'였다.
아스타나(현 누르술탄)는 2017년 엑스포를 개최했다. 당시 주제는 '에너지와 미래(Energy of the Future)'였다.

‘2019~2023 아스타나 건설종합계획’
MICE 집중 육성할 6개 지역은 어디?

아스타나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야심과 아집으로 건설된 꿈의 도시다. 그걸 공증이라도 하듯 자신의 심복을 통해 ‘수도’라는 뜻의 아스타나를 본인의 이름인 ‘누르술탄’으로 개명하게 한 것이다. 아스타나 천도를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에 비견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표트르 대제의 새로운 러시아 건설 의지 덕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늘날 러시아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스타나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며 ‘카자흐스탄의 독립의지와 개척정신을 투영하겠다’는 게 정부의 그럴듯한 배경 설명이다.

정부는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긴 배경으로 균형 발전과 인구 분산 그리고 안보를 든다. 천도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들은 “알마티가 있는 남쪽 지역에 인구가 편중돼 있다(국가전략연구소 마리안 아비 셰바 박사)”라거나 “4만 헥타르(서울의 3분의 2 수준) 크기의 알마티에 120만명이 집중해 도시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니콜라이 티호뉵 건설처 부처장)”며 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더했다.

카자흐스탄 지도와 아스타나(現 누르술탄)

그러나 가장 큰 목적은 국가 안보였다. 1950년대 말부터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 북부로 본격 이주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에는 전체 인구(930만명) 중 러시아인(43%)이 카자흐스탄인(30%) 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이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수도를 북쪽으로 옮긴 것이다.

수도 이전 비용은 첫 10년 동안 무려 1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집계 당시인 2007년 카자흐스탄 GPD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지금까지도 이미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됐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제대로 된 도시로 정착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다수의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낸 의견이다.

이 와중에 카자흐스탄 정부가 2019~2023년 아스타나 건설종합계획을 승인했다. 계획에 따르면, 2만5700 헥타르에서 1만5400 헥타르로 구역 경계를 최적화하고, 멋들어진 건물을 올리기에 적합한 6개 지역을 믄즐득 가로수길, 철도역 누를르 졸, 만겔렉 옐 대로, 투란 대로 서쪽, 텔만 마을 남부지역, 아산카이그 거리로 정했다.

 

아스타나 인구 연평균 2.5% 늘어2030년 ‘200만명’
市, 2023년 지역 총생산량 70% 증가 ‘30조원’ 예상
“향후 5년 일자리 30만개, 관광객 300만~500만명 유치”

바흐트 술탄노프 아스타나 시장은 최근 정부 회의에서 “인구 이동과 출생률이 증가하면서 주민 수는 매년 평균 2.5% 늘어 2023년이면 약 150만명, 2030년엔 20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경제가 매년 4~6% 성장한다는 조건 속에서 2023년까지 아스타나 지역 총생산량은 70% 증가해 10조 텡게(한화 약 30조원)를 초과하게 될 것”이라며 거대한 변화를 맞을 아스타나의 현재와 미래를 열거했다. 이어 그는 “기대하고 있는 경제성장 속도와 과세 기준이 지역예산 자체 수입을 43.7% 증가시켜 3550억 텡게까지 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카자흐스탄과 아스타나시는 장미빛 전망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특히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도시의 주거지역에서 20분 도보로 이동 가능한 곳에 공원과 소공원을 조성하며, 교육을 위해 37개 학교와 10개의 부속 건물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보건 분야에서는 13개의 시설을 건설하는 데 441억 텡게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스타나 정부청사와 시가지.
아스타나 정부청사와 시가지.
Ak Orda 대통령 궁.
Ak Orda 대통령궁 인근 수변공원.

시장이 발표한 계획과 전망이 현실화 된다면, 카자흐스탄은 명실상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입지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술탄노프 시장은 “5년 동안 예산 7조 텡게가 들어오며 6조 텡게의 민간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3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3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는 조건에서 500만명 관광객 유치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5년, 아스타나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 자리매김 할 중요한 시기다. 5년 후 아스타나를 다시 찾는다면 시장의 말대로 꽃과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9월, 유령도시에 가까운 참담한 아스타나를 목격한 터라 기대가 크다.

첨단도시 아스타나? 막상 가보니 ‘유령도시’

아스타나의 원래 이름은 아크몰라(akmola)였다. ‘하얀 무덤’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아스타나의 매서운 추위 때문에 지어진 이름 같다. 아니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 눈 덮인 황량한 풍경이 무덤 같아 보였을 수도 있겠다.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한 내륙국가로 일교차와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인구가 집중돼 있는 알마티와 아스타나의 1월 평균기온은 각각 -5도, -15도로 무려 10도나 차이가 난다. 아스타나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Coldest Capital Cities of the World)’ 2위에 선정될 정도로 기후 여건이 척박하다. 1위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난방 가동률이 높은데 아직도 많은 가정과 기업에서 고체연료 보일러를 사용한다. 카자흐스탄은 국가 자체가 광산이라 불릴 정도로 석탄 등 고체연료가 풍부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당연히 공기가 탁하고 분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아스타나에 머무는 사흘 내내 눈이 시리고 기침이 잦았다. 꽤 좋은 호텔에 묵었음에도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보니 물빛이 거의 고동색이다. 공기 중에 꽤 큰 덩어리의 분진이 섞여있어 마트라도 한 번 다녀오면 샤워를 다시 해야 했다. 이튿날부턴 저녁을 먹으러 나가지 않았고,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아예 저녁거리를 사들고 들어왔다.

출퇴근 시간 외에는 거리에 인적이 드물다. 도시를 구석구석 걷다보면 문득 이 거대하고 수많은 건물과 상가에 대체 누가 살며, 장사는 하고 있는지, 대체 누가 아스타나를 먹여 살리는지 의아했다. 스크루지 영감의 유령이라도 사는지 오가는 사람은 적은데 건물들은 지나치게 화려하고 웅장했다. 도시가 활기를 찾으려면 인구가 더 늘어야 할 것 같다. >>다음회에 계속

※사진제공=카자흐스탄관광부(Kazakh Tourism)

박재아 인도네시아관광부(MoTCE) 한국지사장
지난 17년간 피지‧사모아‧모리셔스‧인도네시아관광부와 연계해 여행을 주제로 섬 나라를 알리는 일을 해왔다. 2005년부터 13년간 피지관광청 한국지시장을 지냈고, 지금은 남태평양관광기구, 사모아관광청의 한국대표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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