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만 좋아할 거라고요? 친구 손잡고 전시회 다녀요
상태바
캐릭터만 좋아할 거라고요? 친구 손잡고 전시회 다녀요
  • 원천보 전시기획자
  • 승인 2019.09.15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연재] 유혹하는 전시_ 어린이전시
2017년 서울 롯데월드에서 열린 인터렉티브 체험전 팀랩월드. 사진=팀랩월드

 

전시시장의 무서운 아이들
‘디지털 네이티브’

지난 4월부터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렸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 토이 스토리를 내세웠던 픽사(Pixar) 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흥행은 성공적이었다. 겨울 왕국을 내세운 디즈니 특별전에 대략 30만명이 다녀갔다. ‘디즈니가 디즈니 했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우정아트센터
'반 고흐를 만나다'展

예술의전당의 흥행 승자는 일러스트레이터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행복극장전’이다. 전시 시장이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루에 2천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거의 매년 어딘가에서 앤서니 브라운 전을 만날 수 있기에 내년에도 열리지 않을까 한다.

시청역에 위치한 우정아트센터는 ‘반 고흐를 만나다’ 전을 열었다. 네덜란드 반 고흐 뮤지엄에서 기획했다는 이 전시는 진품 대신 영상과 체험을 내세웠다. 미술관 입구에서 나눠주는 헤드셋을 끼면 성우가 반 고흐로 변신해 작품을 안내한다. 전시장 곳곳엔 도화지가 배치돼 있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림 그리기에 여념 없다. 이 세 전시의 공통점? 그렇다. 모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전시다.

 

 20~30대 여성이 주도하던 전시 시장
메이저 미술관… 어린이 모시기 전쟁
전시 불황에도 하루 관객 2천명 돌파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전시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콘텐츠 전쟁이 치열한 여름 시즌에 어린이 전시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미술관과 공연장은 20~30대 여성이 주도하는 시장이었다. 비슷한 시기 미술관에서는 루브르 박물관展 혹은 인상파 화가 모네, 르누아르展이 열렸다. SNS에 업로드 할 수 있는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전시도 인기였다. 어린이 전시는 미술관 보다는 이벤트 형식으로 기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규모나 수준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메이저 전시장들이 방학에 맞춰 아이들을 위한 기획전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작품을 성인 여성 눈높이가 아니라 100cm에 맞춰 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니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투입되는 예산이나 상업적 목표도 달라졌다. 어린이 전시의 대형화는 어떻게 가능해진 걸까.
 

프랑스 조지 퐁피두 센터 어린이 갤러리(galerie des enfants) 모습. 사진=퐁피두센터


‘8포켓’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
새로운 문화 소비층으로 부상

한때 전시 기획자들에게 아이들은 다소 귀찮고 소란스러운 존재였다. 예술은 ‘고귀하고’ ‘특별한’ 무엇이라는 믿음 안에서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식과 차분함이 전제되어야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이른바 예술에 대한 절대적 가치와 정숙을 강요받았다. 미술관도 아이들을 싫어했지만 아이들도 미술관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어린이도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어린이가 콘텐츠 시장을 주도할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2019년 6월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국내 키즈 콘텐츠 시장의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신생아 1명당 유아용품 구매에 사용하는 비용은 2009년 270만 원에서 2015년 548만 원으로 연평균 12.5% 증가했다. 줄어드는 출산률 대신 한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면 부모, 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 등 8개 주머니가 생긴다는 ‘에이트 포켓(8 Pocket)’이라는 신조어는 빈말이 아니었다. IPTV에서 VOD 키즈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40~50% 사이를 오간다. 가정에서도 리모컨은 이미 아이들 차지다. 알라딘이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린 것도 완성도 보다는 어린이 콘텐츠 수요 증가가 한몫했다.

8개의 주머니를 차고 태어난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 등쌀에 전시장을 억지로 따라다니는 수줍은 존재가 아니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문화에 대한 경험치가 크고 즐거움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선다. 관전 경험이 쌓일수록 완성도에 대한 감각도 높아진다. 상황이 이러하니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의 태도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일단은 양적인 면에서 눈에 띄게 공급이 늘어났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미술 교육 프로그램이나 어린이 도슨트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인기도 좋은 편이다. 이름난 상업 전시에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본 전시에 비해 2~3배 비싸지만 방학 기간에는 대부분 매진이다. 어린이를 위한 전시는 당분간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을 듯하다.

 

질적성장 없이 반복되는 테마
디지털 네이티브에 대한 이해 부족

하지만 외적 성장과 별개로 질적으로도 발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먼저 전시의 주제다. 대부분 어린이 전시의 한 축은 캐릭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초창기 조악한 체험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만화 캐릭터에 의지하고 있는 점은 같다. 굳이 만화여서 안 될 이유는 없지만 몇몇 특색있는 만화를 제외하면 만화를 굳이 전시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TV에서 보던 캐릭터를 조형물로 확인하는 것은 미술관보다 테마파크가 어울린다. 그쪽이 오히려 만화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자료사진=픽사베이


연출 기법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벽에 걸린 2차원 그림을 보고 큰 감흥을 얻으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아이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와 역동적인 비주얼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좋다. 이 대목에서 디지털의 폐해를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체험해야 할 전시장에서까지 디지털 화면을 봐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사용하는 주체의 의지에 따라 효과는 달라진다.

세계적인 디지털 전시 기업 팀랩(teamLab) CEO 도시유키 이노코(Toshiyuki Inoko)는 TED 강연에서 ‘아날로그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디지털을 만드는 것’이 팀랩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들은 만지고 밟는 등 인터렉션 기술을 활용한다. 아이들의 손가락 끝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뛰어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비가 내리는 등 디지털은 아이들에게 차가움 보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의 유익함이다. 이 대목에선 안타까운 전시가 많다.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지만 들여다보면 기존 학교, 학원 교육과 차별점을 찾기 어렵거나 일방적이고 아카데믹한 접근 방식으로 아이들이 예술과 만날 기회를 막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예술은 또 하나의 강요와 억압이 될 수 있다. 어린이 전시 증가와 함께 수준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어린이에 대한 충분한 관찰이 필요하다.

예술가로 태어나는 아이들
칸딘스키의 영감을 훔쳐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어린이 전시관 RABO LAB의 모습. 사진= RABO LAB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어린이 전시관 RABO LAB의 모습. 사진= RABO LAB

좀 더 나은 전시를 위해 몇 가지 해외 사례를 소개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은 1층에 RABO LAB이라는 어린이 미술 체험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시즌별로 다른 컨셉의 미술체험을 제공하는데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OHP 필름 영상기와 라이트 박스를 활용해 칸딘스키의 예술적 영감을 느껴보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영사기에 형형색색의 비정형 플라스틱 조각을 놓으면 빛이 플라스틱을 관통하면서 벽면에 아름다운 색을 만든다. 매우 간단한 조작으로 색의 혼합과 아름다운 조형을 구성해 볼 수 있다. 교육을 진행하는 프로그래머는 아이들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파란색 조각을 여기 한번 놓아봐. 정말 멋지지?” 아이들은 그저 해보고, 느낄 뿐이다.

또 하나는 퐁피두센터 사례다. 퐁피두센터는 어린이 갤러리를 따로 운영하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전시를 시즌별로 마련한다. ‘예술과 창작의 존재를 일깨우는 것’을 목표으로 한다는 설명에서 어린이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전시 외에도 어린이, 가족, 청소년을 위한 미술관 투어 프로그램을 두고 있다. 아이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대화하는 것은 가족에게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13~16세를 대상으로 한 틴에이지 투어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기획이다. 미술관의 세심한 의지가 읽힌다. 또 퐁피두센터는 ‘Mon Oeli’이라는 캐릭터를 자체 개발해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미술 교육 영상을 홈페이지 상에서 제공한다. 지금까지 149개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

두 미술관의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체험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가능한 설명은 배제한다. 예술가의 아우라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과정은 재미있지만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오감으로 느끼기 때문에 전달의 효율성도 높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예술을 예술로 배운다. 아이들은 예술이 고귀하거나 어렵다고 느끼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미래의 관객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피카소의 명언이 생각난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그가 자라면서 어떻게 예술가의 모습을 유지하느냐다.”
 

원천보 전시기획자
중앙일보 문화사업팀장(2001~2014)과 모바일기반 미디어기업 메이크어스 이사를 지냈다. 전시콘텐츠기획사 빅피쉬씨엔엠   대표로 있다. ‘퓰리처상 사진展’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중앙미술대전’ 외 다수의 작품을 기획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