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 없으면 절대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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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없으면 절대 못 합니다”
  • 수원컨벤션뷰로 유세준 단장
  • 승인 2019.09.0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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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E SUCCESS]
보이지 않는 주역, 마이스 페이지터너

2018년 2월 강원도 평창. 삼수 끝에 유치한 평창동계올림픽 현장이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긴장감이 선수촌을 비롯한 곳곳에 맴돌았다. KTX 진부역에는 VIP 의전실이 설치됐다. IOC 위원장을 비롯한 각국 정상과 수많은 인사가 거쳐간 곳이었다. 당초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주관하에 코레일(Korail) 측에서 의전실을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개막이 임박하면서 의전 수요가 늘자 조직위 요청에 따라 해외 의전 경험이 있는 필자를 포함해 2명이 추가로 투입됐다.

이곳에서 주말은 물론이고 설 연휴도 반납하고 20여일간 근무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들 영접과 안내가 주 업무였다. 여러 인사가 다녀갔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바로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다. 장웅 위원은 10분 정도 의전실에 머물렀다.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문득 그가 자원봉사자들을 가리키며 “올림픽은 이 사람들 없으면 절대 못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그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혹독했던 그해 겨울, 진부사거리에서 밤늦게까지 교통정리를 비롯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여 평창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진정한 영웅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이들이나, 그들의 수고를 알아본 장웅 위원이나 모두 인상적이었다. 어디 평창올림픽뿐이겠는가.

1988년 9월 서울. 단군이래 최대 축제인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당시 한국관광공사는 행사기간 내 선수촌, 기자촌, IBC(국제방송센터), MPC(미디어프레스센터), 패밀리타운과 서울시내 주요호텔에서 관광홍보관과 안내데스크를 운영했다. 주요 선수가족과 기자들을 위한 관광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당시 나는 운영총괄파트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수십 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홍보 브로슈어, 포스터, 각종 물품들을 현장에 공급하는 업무를 도왔다. 자원봉사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도 올림픽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했다. 올림픽 성공에 기여한 보이지 않는 주역들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이름없는 영웅들

숨은 일꾼에 대해 생각하자니 지난여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tvN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이 떠오른다. 여기에도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시대는 구한말. 조정의 상당수 대신이 일제의 강압에 굴복해 자의반 타의반 매국의 길로 접어들고 있던 시기였다. 국권침탈 이후 일제로부터 백작, 자작, 남작 등의 작위를 받은 이들은 자신의 안위에만 신경 쓰느라 나라는 뒷전이었다. 일제 침략에 항거해 의병을 일으킨 주인공들은 권력의 주류가 아니라 일부 지방 양반과 평민들이었다.

1895년 을미의병은 단발령과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한 지방 유생들이 친일내각 타도와 일본세력을 몰아내고자 일으킨 의병이었고 1905년 을사의병은 을사늑약으로 자주권을 상실하자 국권 회복을 외친 민초들의 궐기였다. 1907년 정미의병은 고종퇴위와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반발해 일어난 의병으로 몰락 양반인 안규홍과 평민 신돌석이 주축이었다. 나라를 넘긴 고위층을 대신해 역사에 이름도 남기지 못한 무명의 민초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려고 노력한 장면들이었다.

PCO와 PEO의 성공은 드러나지 않음에 있다. 자료사진=픽사베이

드러나지 않음으로 드러나는 사람들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지면, 자막 위로 영화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이 줄줄이 올라간다. 엔딩크레딧이다. 보통 관객들은 엔딩크레딧이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바쁘다. 영화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스크린 속 주연이나 비중 있는 조연, 그리고 감독 정도일까. 하지만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촬영부터 조명, 녹음, 음악, 소품, 분장과 같이 우리가 잘 아는 역할뿐 아니라 그립, 옵티컬, 텔레시네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자원봉사, 아르바이트생, 스크린과 무대 뒤 인물들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의병까지 그들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다. 주목 받지 못하지만 때론 어떤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사람, 바로 페이지터너다.

악보를 넘기는 손 페이지터너
주인공을 빛내기 위한 2인자
마이스 계의 페이지터너는?
PCO, PEO는 또 다른 주인공

페이지터너란 피아노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말한다. 페이지터너 세계에서는 지켜야 할 공식이 있다. 연주자가 관객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야 하므로 절대 연주자 보다 튀어서는 안 되고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한다. 그래서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입・퇴장하지 않으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연주자 뒤를 따른다. 주인공이 아니므로 박수에 답례해서도 안 되고 관객이 연주에 집중하도록 악보를 넘길 때 외에는 움직여서도 안 된다. 그뿐인가. 연주자와 호흡도 중요하다. 연주자마다 연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악보를 넘기는 타이밍은 물론이고 소리를 내거나 연주자를 건드려서도 안 된다. 악보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하므로 음악적 지식과 집중력도 갖춰야 한다. 연주자만큼이나 온 힘을 다해 연주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무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페이지터너의 실수가 공연 전체의 실수로 이어질 수 있어서 페이지터너 실력에 따라 공연의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페이지터너는 숨은 연주자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세상은 수많은 페이지터너들에 의하여 움직여진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또는 어떤 일의 페이지터너일지 모른다.

오늘도 수많은 국제회의와 행사가 곳곳에서 치러진다. 행사마다 주최와 주관은 명시되지만 PCO나 PEO는 드러나는 법이 없다. 마이스 세계에서 페이지터너는 바로 PCO와 PEO가 아닐까. 물론 그들은 자원봉사나 아르바이트생들처럼 아마추어는 아니다.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들이다. 행사 성공을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새며 철저히 준비하고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장의 변수에 신속히 대처하는 그들의 성실함과 열정, 노하우를 알고 있다. 어떤 행사가 성공적이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땀과 열정이 이뤄낸 산물이다. 모든 페이지터너가 그렇듯 그들은 드러나지 않기 위해 일한다. 드러나지 않음이 그들의 성공인 셈이다. 세상의 모든 PCO, PEO에 경의를 표한다.

 

 

 유세준 수원컨벤션뷰로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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