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273명, 사진 503장’ 인간성 파괴 시대, 치유에 관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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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273명, 사진 503장’ 인간성 파괴 시대, 치유에 관한 서사시
  • 원천보 전시기획자
  • 승인 2019.07.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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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 유혹하는 전시] 인간가족전(The Family of Man)

인간이 만든 잔혹한 사회, 정면으로 응시한 사진전
룩셈브루크 클레르보미술관 인간가족전 전시 모습 (사진출처=steichencollections)

세계인이 가장 많이 본 전시는 무엇일까. 반 고흐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인간가족전(The Family of Man)’이라는 사진전이다. 인간가족전은 1955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초대 포토큐레이터이자 사진가였던 에드워드 슈타이겐(Edward Steichen)이 기획한 전시로 38개국 91개 도시에서 약 900만명이 관람한 것으로 알려진다. 각각의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간가족전을 봤는지 안다면 이 전시의 폭발적인 인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만 62만명, 유고연방의 벨그라드에서는 27만명이 이 전시를 관람했다. 이는 벨그라드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1957년 한국에서도 인간가족전이 열렸다. 원로사진가 임응식 선생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전시를 성사시켰다고 한다. 전시라는 개념조차 낯선 시절, 4주간의 짧은 기간 동안 자그마치 30만명이 전시장을 찾았다고 하니 당시 인간가족전이 국내에 끼친 충격과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관람객 중에는 훗날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성장한 이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이 전시를 통해 사진가로 입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1959년 냉전의 한복판인 모스코바에서 순회전시를 이루어 낸 것도 인간가족전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전시 사진집만 무려 100만권 이상 판매됐고 이 전시에 영향을 받은 사진전이 한동안 유행처럼 제작되기도 했다.

8년간(1955~1962) 전세계 순회를 마친 인간가족전은 에드워드 슈타이겐의 고국 룩셈부르크 클레르보미술관(Clervaux museum)에 영구 전시됐다. 이후 전시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2003년)될 정도로 파급효과는 컸다. 이처럼 인간가족전이 미친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간가족전이 이룬 성취만이 아니다. 특히 기획자의 관점에서 이 전시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전시 형식과 기획자의 시대정신 그리고 전시 제작과정을 살펴야 한다.

전세계 38개국 900만명 관람 ‘단일전시 최고’ 기록

기획자 에드워드 슈타이겐의 숨은 의도들 ‘볼거리’

한국전쟁 참상 알린 기획전, 싸늘한 대중반응 ‘충격’

가해자·피해자에 가해지는 동등한 무게의 책임감

파괴 당한 인간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읽어야

냉전시대 지켜본 한 기획자의 충격적 시선

인간가족전을 기획한 에드워드 슈타이겐 (사진출처=MoMA 블로그)

인간가족전의 기획 시점은 1950년대 초.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직후다. 전쟁은 끝났지만 온전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고 완벽하게 극복되지 않은 불신은 냉전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에드워드 슈타이겐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1951년 ‘한국전쟁의 충격(Korea: the impact of war)’을 기획했으나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미 전쟁을 경험한 대중에게 전쟁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고, 전쟁의 참상을 담은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격적인 이미지가 대중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 에드워드 슈타이겐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보여줄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로 구성된 전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에 나온 ‘인간가족(family of Man)’이라는 표현에 매료됐고 사진가들을 대상으로 인간과 가족이란 주제로 사진을 수집한다.

그 결과 무려 200만장의 사진이 수집됐다. 에드워드 슈타이겐은 3년에 걸쳐 200만점의 사진을 503점(273명 작가)으로 추렸다. 지금처럼 모니터 화면으로 스캔된 사진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으므로 이 작업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최종 선정된 작품들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유진 스미스(Eugene Smith), 안젤 아담스(Ansel Adams)와 같은 유명 사진작가들의 작품도 있었지만 아마추어 작가나 익명의 사진도 포함돼 있었다.

에드워드 슈타이겐은 수집된 사진들을 하나의 주제로 수렴했다. 작품의 의미는 새롭게 부여됐고, 다시 작품은 인간가족이라는 주제를 강화시켰다. 그는 개별 작품을 조명하지 않았으며 작품의 본래의 의미는 아예 시되기도 했다. 이것이 다양한 수준의 작품이 한 전시에서 대등한 무게감으로 전시될 수 있었던 이유다.

‘파격 형식’ 메시지 전달의 완벽한 이중주

파격적인 전시 형식은 인간가족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다. 전시는 라이프(LIFE)지의 사진작가 드미트리커셀(Dmitri Kessel)이 찍은 양쯔강 사진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전시장 벽면에는 성경의 창세기 구절이 적혀있다. 다른 문화적 맥락을 갖는 콘텐츠를 매칭한 이유는 인류의 보편성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해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클레르보미술관 인간가족전 전시장 내부 모습 (사진출처=steichencollections)

서양인들이 믿는 신이 중국의 강 또한 창조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전시가 서양인의 시각에서 기획됐다는 비판은 잠시 유보해야한다. 인간가족전에는 성경뿐 아니라 힌두교, 불교 등 동서양을 막론한 격언과 대문호들의 글이 사용됐다. 이 진리의 글들은 촬영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사진을 감상하는 데 그 간결한 텍스트는 더할 나위 없다. 촬영 당시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하찮게 느껴질 만큼 초월적인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사진과 텍스트는 오로지 인류의 평화라는 메시지를 위한 완벽한 이중주를 펼치고 있다.

이런 드라마를 완성하는 데는 독특한 전시디자인도 한몫했다. 디자인을 맡은 건축가 폴 루돌프(Paul Rudolf)는 전시장의 벽뿐만 아니라, 천장과 바닥을 모두 활용하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감행했다. 사진 크기도 A4용지 정도부터 벽 전체를 덮을 만큼 다양한 크기로 전시했다. 어떤 사진은 기둥을 감쌌고 어떤 사진은 천장에 걸개 형태로 매달았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사진들은 바닥에 원형 형태로 프레임을 짜 즐거운 느낌을 극대화했다. 공간을 재구성하고 관객들의 시선과 동선을 감안해 변화무쌍한 방법을 총동원했는데, 공간을 가득 채운 사진들은 특정한 정서를 만들어냈다.

필자는 클레보르 미술관에서 인간가족전을 둘러봤다. 공간은 다르지만 뉴욕현대미술관의 전시 디자인을 최대한 복원해 당시 상황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다. 인간가족전은 인간의 공통분모인 사랑, 탄생, 기쁨, 환희,성장, 노동 그리고 고통과 죽음의 모습을 생생히 담고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도 미국의 백인 아이들도 모두 저마다 소중하고, 그들의 방식대로 배우고 성장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농민의 찌푸린 얼굴도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비슷하다. 추수가 끝난 후의 축제는 흥겨우며, 자연은 위대하다.

한편에선 늘 그렇듯 누군가는 소외되고 빈곤과 질병에 괴로워한다. 전쟁도 결국엔 일어나고야 만다. 참혹한 이미지 앞,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는 이렇게 묻는다. “누가 살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가? 말해보라!(Who is slayer? Who is victim? Speak!)” 이 질문 앞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은 사라진다. 우리 모두 동등한 무게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마지막에 이르면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진이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다. 결국 인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먹먹한 마음으로 코너를 돌면, 유진 스미스의 사진 ‘천국의 정원으로 가는 길(Walk to Paradise Garden)’이 우리를 맞는다. 종군 사진작가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유진 스미스가 우연히 자신의 아이들이 햇살이 드리운 숲속을 걷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 옆에는 ‘너희들의 발걸음 아래 세상은 태어날거야(A world to be born under your footstep)’라는 프랑스 문호 생트 존 페르스(St. John Perse)의 글이 적혀 있다. 절망 속에서도 인류의 삶이 또다시 꽃피울 것을 암시하는 문구다. 이 사진은 전쟁의 폐허 위에 내팽개쳐진 50년대 세계 시민들에게 희망을 줬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인간가족전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 (사진출처=MoMA 블로그)

통찰 바탕으로 탄생한 새로운 고전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메시지

전시는 보통 작가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반 고흐전’, ‘팀버튼전’, ’르누아르전’과 같이 말이다.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콘텐츠의 힘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유명한 작품을 크고 독립적인 공간에 설치하고 특별한 조명을 드리운다. 작품을 만든 예술가에게 아우라를 부여하고 전형적인 신화 만들기에 집중한다. 성과를 내야 하는 상업전시에서는 그것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그래서 작품 수집은 작가가 얼마나 유명하느냐로 기준을 삼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기준에서 좋은 작품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좋은 기획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나 ‘인간가족전’은 오직 에드워드 슈타이겐이라는 기획자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인 것처럼. 503점의 사진 중에는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이 적지 않지만 에드워드 슈타이겐은 권위에 숨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시대를 통찰하고 대중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메시지를 전시의 중심에 뒀다. 그는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인간 행위의 보편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상식을 넘어서는 업무량을 감수했으며 폴 루돌프라는 혁신적인 디자이너를 선택할 줄 알았다. 문학가 칼 샌드버그와 협업해 시각과 문학이 공존하는 독특한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낡은 고증의 방에서 벗어난 503점의 이미지는 새로운 의미와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한 개인의 시대정신이자, 시대를 초월하는 정신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차별과 다툼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 전시가 던지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인간가족전 보려면

룩셈부르크 클레르보미술관(Clervaux museum)

3월 1일부터 다음해 1월 1일까지 OPEN

(1월부터 2월 28/29까지는 연례 휴관)

수요일~일요일 12:00~18:00 (월, 화 휴무)

원천보 전시기획자
중앙일보 문화사업팀장(2001~2014), 모바일 기반 미디어기업 메이크어스의 이사를 지냈다. 전시콘텐츠기획사 빅피쉬씨엔엠 대표로 있다. ‘퓰리처상 사진展’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중앙미술대전’ 외 다수의 작품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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