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회고展인데 ‘문워크’가 없다고? … 대중스타, ‘현대미술’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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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회고展인데 ‘문워크’가 없다고? … 대중스타, ‘현대미술’로 다시 태어나다
  • 원천보 전시기획자
  • 승인 2019.05.2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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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유혹하는 전시_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On the Wall)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영국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 회고전 사진. 사진출처=마이클 잭슨 영국 전시 홈페이지(www.npg.org.uk)

2018년 하반기 영화계 최대 화제작은 단연 ‘보헤미안 랩소디’다. 900만명을 훌쩍 넘긴 관객숫자(약 995만명, 8일 기준)도 놀라웠지만 오직 입소문의 힘으로 100일 넘게 장기 흥행을 이어갔다는 건 더 놀랍다. 이례적 현상이기에 각계에서 흥행비결을 분석하는 글을 쏟아냈다.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관객의 60% 이상이 ‘퀸’의 음악을 동시대에 접하지 못한 20~30대로 추정된다는 대목이다. 이는 ‘퀸’의 기존 팬덤에만 의존하지 않았단 증거이기 때문이다. ‘퀸’의 팬이 아닌 관람객은 왜 극장가를 찾았을까.

가장 눈에 가장 띄는 건 ‘싱어롱(sing along)’ 상영관이다. 이곳에선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 새로운 것에 늘 목말라 하는 젊은 관객층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마케팅이었다. 콘서트장으로 변한 영화관의 새로운 모습에 20~30대를 축제 행렬에 기꺼이 동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열기가 한참인 지난해 12월 서울 예술의전당은 ‘이매진 존레논展’을 올렸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얼핏 생각해선 50대 이후의 올드팝 애호가에게만 어필할 전시 같지만, 20~30대 관람율이 당초 기획단계에서 예상한 숫자를 훨씬 뛰어넘었다는 게 주최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 전시장을 찾았을 때도 귀로 음악을 들으며, 눈으로 그의 삶을 확인하는 전시는 기대 이상이었는데, 전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존 레논의 음악뿐 아니라, 사회운동, 오노 요코와 러브스토리, 일러스트 작가로서 존 레논의 미술작품 등 다채로운 것으로 채워졌다.

20세기 아이콘 ‘잭슨’ 사망 10주기
소장품 하나 없는 ‘반전’ 전시, 왜?

‘퀸’과 ‘비틀즈’ 그 다음은 누구일까. 이쯤되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마이클 잭슨! 그런데 그의 전시는 존재할까. 정답은 ‘YES’. 단,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다. 지난해 6~10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마이클 잭슨: 온더월(Michael Jackson: On the Wall)’이 열렸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마이클 잭슨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이며 음악, 비디오, 안무, 패션에 걸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시대의 최고 아이콘이다. 게다가 그의 삶에는 인종문제, 미디어와 갈등 등 확대 재생산된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이클 잭슨 사망 10주기가 다가오는 이때, 소재 자체를 선점했다는 것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은 담보한 셈이다.

그러나 막상 이 전시의 반전은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공연장 재현이나, 인터렉티브 노래 따라부르기 같은 전시물을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인물 회고전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간단한 소장품조차 없다. 대신 전시장은 낯선 현대 미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기대하며 전시장을 찾은 관객에겐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미술관에서 미술을 보여주겠다는데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반드시 기획자의 기획취지를 미리 읽고 전시장을 찾아야 한다.
 

미술관 관장 니콜라스 쿨리넌은 마이클 잭슨 회고전이 현대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현대미술'임을 강조했다. 사진출처=마이클 잭슨 영국 전시 홈페이지(www.npg.org.uk)
마이클 잭슨은 장르를 불문하고 아티스트들에게 '영원한 뮤즈'로 남아있다. 사진출처=마이클 잭슨 영국 전시 홈페이지(www.npg.org.uk)

미술관 관장인 니콜라스 쿨리넌(Nicholas Cullinan)은 전시 오픈식에서 이 전시가 마이클 잭슨이 현대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현대미술’ 전시임을 밝혔다. 현대미술을 통해 문화적 충격을 선사한 인물을 탐구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고 있으며, 마이클 잭슨에 매료됐던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방식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의 설명대로 이 전시에는 무려 48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마이클 잭슨을 소재로 만든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에는 타임지 1면을 장식했던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마이클 잭슨 초상을 비롯해 키스 해링(Keith Haring),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미디어, 설치작업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16개 화면에 ‘스릴러(Thriller)’를 아카펠라로 부르는 모습을 담은 멀티미디어 장치, 풍선과 리본, 로퍼 슈즈로 마이클 잭슨을 형상화한 설치작품, 마이클 잭슨이 직접 주문했다는 필립 2세의 기마 초상을 토대로 그린 작품(이 작품은 마이클 잭슨의 사망한 다음해 완성됐다고 한다), 창백한 하얀 피부색을 가진 잭슨의 얼굴을 클로우즈업 한 초상작품, 무대에 선 마이클 잭슨은 보이지 않고 전세계의 열광하는 팬들만 연결해서 보여주는 미디어 꼴라주 작업 등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 전시의 반전은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연장 재현이나, 인터렉티브 노래 따라부르기 같은 전시물을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부분

인물 회고전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간단한 소장품조차 없다. 

대신 전시장은 낯선 현대 미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장르 불문’ 아티스트들에겐 ‘영원한 뮤즈’
기획자 쿨리넌, 잭슨에게 바친 최고의 헌사

이토록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마이클 잭슨이라는 한 명을 현대미술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들어 진 게 아니란 사실이다. 이미 만들어진 작업들을 수집해 하나의 전시로 만들었다. 이런 경우, 마이클 잭슨이라는 공통분모 외에는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전시는 현대작가 48명의 작업을 통해 마이클 잭슨의 초창기인 잭슨 파이브(Jackson Five)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복합적인 정체성의 얼굴들을 꼼꼼히 보여주고 있다.(한 인물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얼굴이란 초상박물관에 딱 맞는 주제 아닌가)

그만큼 오랫동안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물이 많은 작가들의 뮤즈로서 다양한 영감을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주최 측의 충분한 리서치와 견고한 기획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제작방식이다. 분명 마이클잭슨재단을 포함해, 작품의 섭외를 위해 48명의 작가와 지난한 설득 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아주 조금만 현대 미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전시를 관람한다면) 마이클 잭슨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형적인 인물 회고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詩)적인 상징과 함축, 시각적 즐거움이 가득찬 독특한 감성의 공간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이는 분명, 스스로 마이클 잭슨의 팬이었다고 밝힌 미술관장 니콜라스 쿨리넌이 미술 기획자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였을 것이다. 20세기 가장 사랑받았던 흑인이자 팝의 제왕을 향한 헌사 말이다. 이 전시는 영국 이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 독일 본 분데스쿤스트할레(Bundeskunsthalle), 핀란드 이스푸 현대미술관(Espoo Museum of Modern Art)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 회고전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투영된 잭슨 생애를 '수집'해 '대중콘텐츠'로 전시화됐다.  사진출처=마이클 잭슨 영국 전시 홈페이지(www.npg.org.uk)
마이클잭슨 회고전은 창의적 발상과 참신한 접근방식으로 소재의 잠재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출처=마이클 잭슨 영국 전시 홈페이지(www.npg.org.uk)

존 레논, 마이클 잭슨 그리고 방탄소년단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보여준 가능성

대중 콘텐츠의 전시화는 더 이상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특히 인물에 관한 전시 사례는 너무나 많다. 비단 팝스타가 아니더라도 마를린 먼로, 찰리 채플린, 오드리 햅번 등 영화배우, 스텐리 큐브릭, 팀 버튼,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은 영화감독들도 전시화 된 적 있다. 미술관에서도 대중콘텐츠를 엄연히 다시 조명할 가치가 있는 예술적 장르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시점에서 좀더 주목해 봐야 할 것은 기획자들이 대중콘텐츠를 다루고 있는 접근 방식이다. 오드리 햅번 전시를 예로 들자. 오드리 햅번을 로마의 휴일에서의 요정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서 말년에 유니세프 활동을 하며 기부천사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건 너무나 예상 가능한 전개다. ‘설마, 이런 전개만은 아니겠지?’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봤지만, 나의 예상을 깨고, 너무나 예상 가능한 표현과 내용이었다. 그것 자체를 결함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굳이 꼭 이 전시를 봐야하는가?’라는 대목에선 아쉽다.

기획자의 충분한 리서치를 통한 창의적 발상과 도전적인 기획은 소재가 가진 잠재력을 무한히 확장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존 레논의 음악을 들었고, 마이클 잭슨의 영광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세대와 BTS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것을 경험한 세대는 결코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지만, 우리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떼 창을 부르는 것을 목격했다. 거듭 생각해도 기획의 힘은 놀랍고, 시장은 정직하다.

원천보 전시기획자
중앙일보 문화사업팀장(2001~2014), 모바일 기반 미디어기업 메이크어스의 이사를 지냈다. 전시콘텐츠기획사 빅피쉬씨엔엠 대표로 있다. ‘퓰리처상 사진展’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중앙미술대전’ 외 다수의 작품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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